현재 서울 종로구 운니동에 위치한 운현궁은 고종의 잠저이고 흥선대원군의 사저였다. 고종이 1863년 12세로 즉위하기 전까지 살았던 곳이 운현궁이고 대원군 이하응의 정치활동 근거지로서 유서 깊은 곳이다. 격변기 한국근대사에서 독특한 역사적 위상을 지닌 공간이다.
남아있는 주요 건물로 노안당, 노락당, 이로당이 있다. 솟을대문을 통해 들어가면 대원군의 사랑채인 노안당(老安堂)을 만나는데, 이곳은 국왕인 고종을 대신해 10년 동안 섭정을 했던 곳이다. 노안당의 뒤편, 누마루는 남자들이 책 읽는 공간이다. 이어지는 다음 채, 노락당(老樂堂)은 아들이 임금이 되어 노인이 즐겁다는 뜻입니다.
이곳에서 1866년(고종 3년), 고종과 명성왕후의 전통 혼례가 열렸다. 이후로는 왕실의 별궁이 되어 왕실가문의 공식행사만 치를 수 있었다.
다음 두 번째 안채인 이로당(二老堂)은 흥선대원군과 부대부인 민씨의 거처로 사용되었습니다.
뒷마당 담벼락에 붙은 작은 문은 빙고(氷庫)로 얼음을 넣어두는 창고로 쓰였다. 뒤마당 한켠에 있는 경송비(慶松碑)는 고종이 어릴 때 올라가서 놀던 소나무를 기린 비석으로 소나무는 벼락을 맞아 없어지고 비석만 남아있다. 이로당에서 출입문으로 나오면, 운현궁 담장따라 그려진 꽃담을 보게 된다.꽃담에는 열 개의 문자가, 영세춘(永世春, 영원토록 봄과 같기를), 수복강녕(壽福康寧, 오래 살고 복을 받고 건강하기를), 만세락(萬歲樂, 영원히 즐겁기를)이 새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