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I, International Vaccine Institute
1990년대 중반, 대한민국은 경제 대국으로 도약하며 세계 무대에서 새로운 역할을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시기, 전 세계 어린이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한 인류애적 대역사가 서울에서 시작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개발도상국 어린이들의 생명을 앗아가는 전염병과의 싸움을 위한, 수익이 아닌 생명을 우선하는 세계 유일의 국제기구, 바로 국제백신연구소(IVI, International Vaccine Institute)의 유치 비화입니다.
1990년, 유엔개발계획(UNDP)은 충격적인 통계에 직면합니다.
매년 수백만 명의 개발도상국 어린이가 콜레라, 장티푸스 등 빈곤 관련 질병으로 목숨을 잃고 있지만, 다국적 제약회사들은 수익성이 낮다는 이유로 이들을 위한 백신 개발을 외면하고 있었습니다.
이에 UNDP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생명'을 지키기 위해, 특정 국가나 기업의 이익이 아닌 '개발도상국 어린이'만을 위한 백신 연구소를 국제기구로 설립하는 계획을 추진합니다. 이 연구소는 백신을 개발하고, 그 기술을 저렴하게 생산할 수 있도록 개도국에 이전하는 인도주의적 사명을 띠게 될 것이었습니다.
1995년, UN 창립 50주년 기념식에 모인 70여 개국 정상들은 이 숭고한 계획에 찬동하며 연구소 설립(안)을 논의했습니다. 이제 문제는 연구소의 본부를 어디에 유치할 것인가였습니다.
IVI 본부를 유치하는 것은 단순히 국제기구를 국내에 둔다는 명예 이상의 의미였습니다.
생명 과학 분야의 발전, 국제적 위상 강화, 그리고 무엇보다 인류 공헌국으로서의 역할 수행을 의미했습니다. 그러나 유치 조건은 까다로웠습니다.
UNDP가 제시한 조건은 파격적이었습니다. 유치국은 약 5,000평 규모의 첨단 연구소 건물 전액 기증, 연구용 기자재 구입을 위한 600만 달러 지원, 그리고 초기 운영비의 상당 부분(약 30%)을 부담해야 했습니다. 이 막대한 재정적 부담에도 불구하고 생명과학 발전에 대한 기여를 기대한 여러 나라가 유치 경쟁에 뛰어들었습니다.
이때, 대한민국의 김영삼 대통령은 단호한 결단을 내립니다. 대통령은 "우리가 어려울 때 도움을 받아 이만큼 성장했으니, 이제는 그 은혜를 갚아야 한다"고 말하며 연구소 유치에 강력한 찬동 의사를 밝혔습니다.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하는 나라'로의 전환, 이는 단순한 정책 결정이 아닌, 대한민국이 세계 사회에 던진 가슴 벅찬 선언이었습니다.
결국, 김영삼 대통령은 200여 정상이 모인 UN 기념식에서 "대한민국이 세계 어린이 질병 퇴치를 위하여 백신 연구소를 건립할 것"이라고 공식 선언하며 IVI 본부의 한국 유치를 확정지었습니다.
IVI 유치와 설립 과정에는 헌신적인 노력을 기울인 이름 없는 영웅들이 있었습니다.
그중에서도 한국 과학계의 거목인 조완규 박사의 공로는 빼놓을 수 없습니다. 전 서울대학교 총장과 교육부 장관을 역임한 조 박사는 IVI의 유치위원장을 맡아 한국 본부 유치를 위해 전방에서 뛰었습니다.
조완규 이학박사 (국제백신연구소 한국후원회 상임고문)
조 박사는 IVI 유치에 대한 정부와 과학계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그는 연구소 유치가 단순히 외교적 성과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생명과학 발전에 기여하고 인류 보건에 봉사하는 사명임을 강조하며 지치지 않는 열정을 보였습니다.
김영삼 대통령에게 IVI의 국내 유치 명분을 제공하고, 세계보건기구(WHO)의 비토를 설득하여 한국 건립을 가능하게 한 장본인입니다.
IVI가 유치된 후에도 조 박사는 1999년부터 현재까지 IVI 한국후원회의 상임고문을 맡아 연구소의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90대 후반의 액티브 시니어로서 매일 IVI 사무실에 출퇴근하며 연구소의 발전을 돕고 있다는 사실은, 그의 IVI에 대한 깊은 애정과 인류 봉사의 신념을 엿볼 수 있게 합니다.
그는 봉사하며 사는 삶이 '진짜 성공'이라고 강조하며, 평생을 과학자의 길과 인류애 실현에 바치고 있습니다.
IVI 유치가 확정된 후, 대한민국은 약속 이행에 속도를 내야 하는데. 정부의 담당부처 관료는 예산이 없다며 차일피일 시간만 끌게 됩니다. 대통령도 말로 선언만 해버리고 후속 조치를 하지 않아 설립에 난황을 겪게 됩니다.
이에 조 박사는 정부 부처를 전방위로 설득을 하고, 후원회를 조직하여 자금 모금 및 건립 부지 제공 아이디어를 내서, 극적으로 IVI는 서울대학교가 제공한 연구공원 내에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또한 조 박사께서는 이 후원회에 김대중 정부의 이휘호 여사를 한국후원회 초대 명예회장으로 추대하여 건립에 지대한 힘을 보태게 하였는데, 이로인해 대한민국 영부인들은 IVI한국후원회 명예회장직을 연이어 맞는 관례가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2003년, 한국 정부의 전면적인 지원 속에 5,000평 규모의 최첨단 연구소 건물이 완공되었습니다.
2004년, 주한 외교관, 학계, 산업계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한국 정부는 IVI 건물을 정식으로 국제기구에 기증하는 뜻깊은 식을 가졌습니다.
이 자리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정부가 IVI 사업을 지속적으로 지원할 것임을 다짐하며, IVI가 명실상부한 대한민국의 첫 국제기구 본부이자, 세계 어린이들의 생명을 지키는 최전선이 되었음을 선포했습니다.
IVI는 대한민국 국민의 은혜를 갚고자 하는 숭고한 정신과 조완규 상임고문 같은 헌신적인 인물들의 노력이 합쳐져 탄생한 인류애의 결실입니다.
현재 IVI는 전염병과의 싸움 최전선에서 인류 보건 증진에 혁혁한 공을 세우고 있으며, 이는 곧 '한강의 기적'을 넘어 '생명의 기적'을 만들어낸 대한민국의 위대한 유산으로 남아 있습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