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군위) 차가운 공기가 물러가고 움트는 새싹들이 기지개를 켜던 지난 봄, 경상북도 군위에 자리한 ‘사유원(思惟園)’을 찾았습니다. 고즈넉한 산자락에 고요히 안긴 이곳은 인간이 만든 건축물과 자연이 빚어낸 풍경이 한 치의 어긋남 없이 조화를 이루며, 방문객에게 오롯이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사색의 시간을 선사하는 특별한 공간이었습니다. 어쩌면 그 어떤 화려한 수식어도 무색하게 느껴지는, ‘생각을 품는 정원’이라는 이름 그대로의 경험을 마주하고 돌아왔습니다.
사유원은 ‘자연 그대로의 시간’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곳이었습니다. 갓 피어나는 여린 연둣빛 잎새들이 산책로를 따라 속삭였고, 계곡물 소리가 잔잔하게 들려왔습니다.
인위적인 아름다움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존중하고, 그 안에 건축을 한 점의 예술 작품처럼 녹여낸 듯한 배려가 곳곳에서 느껴졌습니다. 건축가들은 자연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동선을 설계했고, 최소한의 재료로 최대한의 깊이를 담아내려 애쓴 흔적이 역력했습니다.
단순한 선과 면으로 이루어진 구조물들은 그 자체로 풍경의 일부가 되어, 시시각각 변하는 빛과 그림자에 따라 다른 표정을 보여주었습니다. 마치 공간 자체가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빠르게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 잠시 멈춤이 필요했던 저에게 사유원은 완벽한 '쉼표'이자 '느낌표'가 되어주었습니다. 휴대폰은 주머니 속에서 잠자게 하고, 오직 발걸음과 시선이 이끄는 대로 정원을 거닐었습니다. 잔디밭에 흩뿌려진 조약돌 하나하나, 고목나무 가지 끝에 매달린 작은 봉우리들, 그리고 발 아래 밟히는 흙의 감촉까지 온몸의 감각이 깨어나는 것을 느꼈습니다.
'여백의 미'가 가득한 공간은 바쁘게 살아오며 미처 돌보지 못했던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는 여유를 주었습니다. 숲속 벤치에 앉아 바람 소리를 듣고 있자니, 번잡했던 머릿속이 차츰 정리되고 마음속 깊이 가라앉아 있던 생각들이 하나둘 떠올랐습니다.
그것은 마치 오래된 먼지를 털어내고 숨겨져 있던 보물을 발견하는 듯한 경험이었습니다. 나 자신과의 온전한 대화를 통해 작은 고민들이 해결되고, 앞으로 나아갈 힘과 평온함을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초봄의 사유원이 새로운 시작과 생명의 움틈을 통한 잔잔한 위로를 주었다면, 문득 가을날의 사유원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졌습니다. 만약 낙엽이 물들어 붉고 노란빛으로 수를 놓을 때 다시 이곳을 찾는다면, 또 다른 감동과 성찰의 시간을 선물받을 것만 같습니다.
초록의 싱그러움이 지나 깊어가는 계절의 풍요로움과 숙성된 아름다움 속에서, 삶의 또 다른 의미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요. 붉게 타오르는 단풍 사이를 거닐며 사색에 잠기는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설렘을 안겨줍니다.
군위 사유원은 단순한 정원을 넘어, 바쁜 현대인의 삶에 잠시 멈춤을 제공하고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사유의 공간'이었습니다. 초봄에 받은 깊은 울림을 기억하며, 계절의 옷을 갈아입은 가을 사유원을 다시 만날 그 날을 손꼽아 기다려봅니다.
그때는 또 어떤 깨달음과 평화가 저를 기다리고 있을지, 벌써부터 마음이 부풀어 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