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신에 영혼이 깃든 것이 아니다.
영혼을 담은 그릇이 육신인 것이다.
영혼은 빛의 광원이고, 육신의 스크린에 비춰 현실을 투영하는 것이다.
빛은 정묘한 파동으로 우리가 이해하는 그 진동이다. 이 진동이 외부 세계의 현실과 동조하는 것이다.
마음 다잡고 헌신하기로 다짐하면서 간절히 기도를 드린 다음에 원하는 응답이 야니라 오히려 악화되는 상황을 맞는 경우를 왕왕 경험한다.
분명히 믿음으로 고백하고 그 순간만큼은 순교까지도 불사할 만큼 온 마음을 다해 기도를 드렸는데도 말이다.
그란데 과연 진짜 믿음이었는가?
왜 믿음의 기도를 하였는데 오히려 악화되거나 반대의 상황이 초래되는가?
끌어당김의 법칙을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용어의 불일치성이 없지 않으나 가장 많이 나오는 말 중에 하나라 그대로 인용한다.
오히려 공명 또는 동조나 동양적 표현인 동기감응이 더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여하튼 같은 기, 기운을 당긴다는 의미이다.
그러면 믿는다고 하며 기도했는데 왜 원치 않는 결과를 경험할까?
여기서 날것 그대로 솔직해 보자.
진짜 믿음으로 기도했는가?
오히려 일말의 우려를 갖고 기도를 하지 않았을까?
사실 믿음으로 한다고 하면서, 믿사옵니다를 외치면서 하지만 기저 깊은 곳에서는 “과연 그럴까?” 하는 의구심을 갖은 것은 아닐까? 실제로 기도 전에는 긴기민가 하던 것도 기도를 하면서 마음 깊은 곳의 침착된 의식이 비집고 나오는 것이다.
“승진하게 해주시고 응답해 주심을 믿습니다.”라고 기도를 하면서 속으로는 '과연 그렇게 될까?' 또는 '내가 뭐라고...선두 주자도 있는데' 하고 속마음 생각이 올라 온다.
바로 이 시점에서 마음의 진실이 드러나게 된다.
기도 전에는 내 마음의 진심이 불명확한 것이었는데 깊은 기도를 통해 마음 깊은 본심이 최종적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기도 전에는 긴가민가 했던 아니 아예 생각지도 않은 진실을 말이다.
그 진실이 아무리 겨자씨 만한 것일지라도 현실을 끌어당겨 실현되는 것이다.
기도의 바램이 아니라 기도 속의 의구심을 끌어당긴 것이다. 바램은 희망을 표현하지만 의구심은 팩트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솔직히 다들 경험하는 일일 것이다.
승진이던 합격이던 그 어떤 소원을 간절히 부르짖고는 속에서부터 진짜로 될까하는 의문을 갖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믿사옵니다라고 힘 주어 눌러 간구를 한다.
의구심은 힘 주어 누를수록 더 튀어 오르는 속성이 있다. 마치 고무 튜브를 수조에 내리 눌러 물속에 넣고자 할수록 물 밖으로 튀어 오르는 것처럼 말이다.
진정한 믿음의 기도, 응답받는 기도는 그대로 믿는 마음의 기도이다.
애쓰지 않고, 힘주어 추스리지 않고, 순전하게 믿는 마음 중심의 기도이어야 한다.
마음을 다잡아서 억지로 간구하는 기도는 오히려 반대의 결과나 상황을 끌어당긴다.
어쩌면 함부로 기도할 일이 아니다.
순수하고 순전한 기도이어야 한다.
어린 아이의 마음과 같은 기도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