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재호 태재대 총장

─ 창의성과 사고력을 갖춘 인재를 길러내기 위해, 대학의 교육 시스템은 앞으로 어떻게 바뀌어야 한다고 보십니까?

“이제는 대학 교육의 틀 자체를 근본적으로 재구성해야 할 시점입니다. 기존처럼 교수가 강의를 통해 지식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방식은 한계에 직면했어요. 온라인 강의가 일상화됐고, AI를 활용하면 원하는 정보를 실시간으로 검색할 수 있는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대학은 ‘지식을 전달하는 곳’이 아니라, ‘질문하고 토론하며 문제를 함께 해결해나가는 공간’이 되어야 해요. 과거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 출신 교수들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는데, 그들이 ‘미국의 대학은 진짜 대학이 아니다’라고 말한 것이 인상 깊었습니다. 그들에게 있어 ‘진짜 대학’이란 교수와 학생이 소크라테스식 문답법을 통해 사고를 확장하는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앞으로의 대학은 단순히 지식을 축적하는 공간이 아니라, 인간적인 성장을 가능하게 하는 구조로 바뀌어야 합니다. 교육 시스템 자체를 사람 중심으로 재설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인거죠.

그래서 태재대학교는 ‘교수가 강의하지 않는 수업’을 교육의 기본 원칙으로 삼고 있습니다. 핵심 개념은 짧은 영상 콘텐츠로 사전에 전달하고, 실제 수업 시간인 100분은 온전히 학생이 주도하는 액티브 러닝(active learning)으로 구성합니다. 교수들이 퍼실리테이터가 되어 수업을 유도하면 학생들이 토론에 참여하고, 퀴즈를 풀고, 문제해결 전략을 수립하고, 실질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경험을 통해 배워가도록 설계돼 있죠.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사고력, 창의성, 협업 능력이 함께 길러집니다.”

─ 대학 교육이 변화하는 만큼 교수자의 역할도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총장님께서 보시는 앞으로의 교수자는 어떤 철학과 정체성을 가져야 할까요?

“앞으로 교수자는 단순한 ‘강사’가 아니라, 진정한 의미에서 ‘스승’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작년에 스승의 날을 맞아 비슷한 주제로 칼럼을 쓴 적이 있습니다. 중학교 시절, 감기에 걸려 수업 시간에 엎드려 있었던 저를 담임 선생님께서 양호실로 데려가시며, 간호 선생님께 ‘이 아이는 제 아들이니 잘 좀 봐주세요’라고 말씀하셨던 장면이 아직도 제 마음에 깊이 남아 있습니다. 우리가 평생 기억하는 스승은 지식을 잘 가르쳐준 사람이 아니라, 학생을 한 사람으로 따뜻하게 품어줬던 존재였죠.

지금은 AI 디지털교과서가 지식을 훨씬 더 정확하고 빠르게 전달합니다. 교수자보다 설명을 더 잘하고, 학생이 어느 부분에서 이해를 놓쳤는지도 실시간으로 분석해주는 시대죠. 그렇다면 교수자는 앞으로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요? 이제 교수자의 본질은 ‘지식을 전달하는 사람’에서 ‘학생이 사람답게 성장할 수 있도록 곁에서 돕는 사람’으로 전환돼야 합니다.

과거에는 ‘지·덕·체’를 함께 기르는 전인교육이 강조됐지만, 산업화 이후 교육은 점차 지식 중심으로 편중됐어요. 그 과정에서 많은 학생들이 자신의 자리와 역할을 스스로 탐색할 기회를 잃었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직접 부딪혀보고, 협력하고, 실패를 겪어보면서 비로소 자기 성향을 이해하게 됩니다. 학생들이 서로 부딪히고 협업하며, 타인을 이해하고 공감하고, 자기 생각을 창의적으로 표현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은 AI가 결코 대체할 수 없는 영역입니다. 앞으로 교수자는 단순한 수업 전달자가 아니라, 학생의 삶에 깊이 관여하며 인간다움의 근육을 길러주는 조력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새로운 시대의 교수자가 지녀야 할 철학이며, 존재 이유라 할 수 있습니다.”

─ 앞으로 대학은 어떤 사회적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대학은 앞으로 사회 안에서 훨씬 더 본질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합니다. 지식을 생산하고 연구하는 기능은 여전히 중요하며, 실제로 많은 연구 중심 대학들이 이 분야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내고 있죠. 하지만 그 과정에서 종종 간과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교육, 특히 학부 교육이 지닌 본질적인 가치입니다.

최근 대학 현장을 들여다보면 교수들이 연구와 논문 작성에 몰두하는 사이 학부 수업은 점차 형식화되거나 소홀해지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어요. 그러나 진정한 대학의 가치는 오히려 학부 교육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처럼 불확실성이 큰 시대에는 하나의 전공만으로 평생을 살아가기 어려워요. 따라서 대학은 학부 단계에서 기초 역량을 체계적으로 길러주고, 대학원에서는 이를 보다 심화·확장할 수 있도록 교육 구조를 설계해야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기초 역량은 단순한 지식의 암기나 전달을 의미하는게 아니에요. 비판적 사고력, 협업과 소통 능력, 다양성에 대한 감수성, 그리고 가짜 뉴스를 분별해낼 수 있는 미디어 리터러시 등 미래 사회를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역량을 포함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태재대학교는 학부 교육에 교육적 역량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어떤 진로를 선택하든 흔들리지 않는 기반을 갖추도록 사고력, 표현력, 문제 해결 능력 등 전방위적인 기초 체력을 키우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대학이 앞으로 사회와 미래 세대를 위해 책임지고 감당해야 할 가장 중요한 역할 중 하나라고 확신합니다.”

─ 지금 대학이 학생들에게 반드시 길러줘야 할 핵심 역량은 무엇일까요?

“AI는 이미 정보와 지식을 처리하는 능력에서 인간을 앞서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AI가 대체할 수 없는 인간 고유의 능력, 즉 윤리와 도덕, 공감 능력, 그리고 다양성에 대한 이해와 수용력이 훨씬 더 중요해질 겁니다. 그중에서도 핵심은 ‘다름을 인정하는 태도’예요.

요즘 학생들을 보면 자기중심적 사고가 강해지고 있다는 인상을 받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제도가 자신에게 불리하다고 느껴지면 곧바로 ‘불공정하다’고 단정 짓는 경우가 많죠. 하지만 진정한 공정함은 서로 다른 입장을 이해하고, 조율하려는 태도에서 출발합니다. 결국 오늘날 대학 교육이 가장 먼저 길러야 할 역량은 공감력과 타인에 대한 배려, 다양성을 수용할 수 있는 감수성입니다.

태재대는 이걸 실천하기 위해 전원 기숙사제를 기본으로 운영하고 있어요. 학생들이 함께 지내며 부딪히고, 타협하고, 때로는 불편함을 함께 겪는 경험을 통해 이런 역량을 자연스럽게 익히도록 하는 거죠. 게다가 저희 학교 학생들은 배경도 참 다양합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이스라엘, 튀니지처럼 전 세계에서 온 친구들도 있고, 모델, 전직 교사, 예술가 등 삶의 궤적이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어요. 이런 친구들과 함께 생활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시야가 넓어지고, 서로 다른 삶의 방식과 가치를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 대학이 아무리 노력해도 제도와 환경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한계가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날 대학 교육을 위해 가장 시급히 개선해야 할 과제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대학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일입니다. 지금 대학에 필요한 건 복잡한 규제나 획일적인 지침이 아니에요. 각 대학이 스스로 방향을 설정하고, 자율적으로 실험할 수 있는 여건이 절실합니다.

우리는 지금 교육의 틀이 근본부터 흔들릴 정도로 큰 전환기를 맞고 있습니다. AI는 단순한 기술이 아니에요. 지식을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 뿐만 아니라, 교육의 존재 이유 자체를 다시 묻게 만드는 존재죠. 학생들의 생애 주기, 학습 방식, 직업 구조까지 모든 것이 달라졌지만, 여전히 우리는 과거의 기준과 틀에 대학을 묶어두고 있는 현실입니다.

문제는 대학마다 철학과 지향점, 학생 구성과 교육 여건이 모두 다른데도 동일한 잣대로 평가하고, 동일한 구조를 강요받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 같은 상황에서는 창의적인 혁신이 나올 수 없습니다. 지금의 행정 시스템은 마치 이미 성인이 된 자녀에게 계속해서 ‘이 옷을 입어라’, ‘저 길로 가라’며 간섭하는 부모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아요.

대학은 본질적으로 배움과 실험의 공간입니다. 그런데 모든 학교를 동일한 조건 속에서 경쟁하도록 만든다면, 결국 어느 누구도 앞으로 나아가기 어렵습니다. 대학이 대학다울 수 있으려면 ‘감독’보다는 ‘신뢰’, ‘통제’보다는 ‘동반자적 지원’이 우선돼야 합니다. 각 대학이 고유한 철학과 정체성에 따라 자신만의 교육 모델을 자율적으로 실현해갈 수 있도록, 보다 넓고 깊은 자율의 장을 열어주는 것이 지금 가장 시급한 과제입니다.”

─ 마지막으로, AI시대를 살아갈 청소년과 청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제가 청년들에게 항상 전하는 말이 있습니다. ‘Be a voice, not an echo.’라는 미국 명언으로 ‘자기 목소리를 내야지, 메아리가 되면 안 된다’라는 뜻이에요. 많은 청년들이 자신만의 생각이나 방향 없이 사회가 정해놓은 길을 그대로 따라가는 데 익숙해 보여요. 특히 좋은 대학, 대기업, 안정된 직장이라는 공식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믿는 경우가 많죠. 하지만 이제 그런 공식은 더 이상 통하지 않아요. 우리는 이미 조직 단위가 아닌 개인 단위로 일하는 시대로 넘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대기업들도 대부분 신입사원이 아니라 경력직을 중심으로 채용하고 있어요. 꼭 처음부터 큰 조직에 들어가려 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중소기업이든, 스타트업이든, 자신의 실력을 키울 수 있는 곳에서 시작하면 됩니다. 중요한 건 어디서 일하느냐가 아니라, 어떤 성장을 경험하느냐예요. 지금은 졸업장이 아니라 실행력, 스펙이 아니라 ‘진짜 실력’이 중요한 시대입니다. 앞으로는 조직보다 개인 네트워크 중심의 프리랜서형 직업 구조가 훨씬 많아질 겁니다. 우버나 배달 플랫폼처럼 각자 연결돼서 일하는 세상이 이미 오고 있어요.

이런 시대를 살아갈 여러분에게 정말 중요한 건 자신 안에 있는 고유한 힘, 자기 목소리,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능력이에요. 그건 눈에 잘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죠. 그게 바로 AI시대를 살아갈 진짜 경쟁력입니다.”

<출처 : 조선에듀 2025.5.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