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쓸시론] 국회 데자뷰 같은 사건에 대한 다른 감상

닥터 아놀드의 알고보면 쓸데있는 시론 (1)
2009년에 쓴 칼럼 원고가 2019년에 재림하다.

데스크 승인 2020.01.19 18:18 | 최종 수정 2020.02.02 17:43 의견 0

이 글은 10년 전에 작성된 것임을 고려하여 읽어 주시기 바란다. ( )안은 현재 시점에서 가필을 하였다

"온 국민에게 너무도 강렬한 인상을 준 사건들 중에 단연코 국회의 전기 톱 사건을 뽑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어느덧 시간이 흘렀다고 생각했지만, 신문 지상에 간간이 빠지지 않고 거론 되는 것을 보면 역시 올 해의 이벤트였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사건은 참신성이나 충격성보다는 해외토픽 감으로까지 소개될 정도로 넌센스이자 국제적인 개그 콘서트였기 때문이다."(2009년 작성)

2008년 12월 19일 한나라당의 전기톱 진입


(작년 국회에서 일어나서 강렬한 인상을 준 사건들 중에 단연코 회의실 진입 빠루 사건을 뽑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어느덧 시간이 흘렀다고 생각했지만, 신문 지상에 간간이 빠지지 않고 거론 되는 것을 보면 역시 올 해의 이벤트였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사건은 참신성이나 충격성보다는 해외토픽 감으로까지 소개될 정도로 넌센스이자 국제적인 개그 콘서트였기 때문이다.)

2019년 4월 26일 자유한국당의 빠루 진입

"그럼 이 글에서 필자 역시 또 한번 국회 데자뷰의 성토를 하려 하는가? 아니다. 나는 다른 생각을 갖기에 글을 쓰고자 한다. 한가지씩 해부해 보자.

국회는 왜 싸우는가? 원래 국회는 싸우는 곳이다.

만약 국회에서 안 싸우면 국정은 어떻게 될 지 한번 생각해 보자. 정당이란 이해 관계자들의 집단 결사체이다. 따라서, 정당 간의 싸움은 이해 관계자 간의 이권싸움인 것이다. 여기서 이해 관계자란 다양한 요소로 구성이 되지만, 요약하면 정강정책을 같이 하는 사람들인 것이다. 이 사람들이 자기 집단의 이권을 획득하고자 집권을 노력하는 것으로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인 것이다. 정당은 공천을 통해서 국회 입후보자를 내고, 선거를 거쳐 의원을 배출하게 된다. 곧 선거구별로 대표를 선발해서 국회로 보내는 일이다. 그러니, 국회는 대표 선수들의 경기장인 것이다. 대표 선수들은 경기가 격해지면 가끔 충돌을 일으키고, 때론 주먹다짐도 하게 된다. 축구, 농구, 야구, 아이스하키 등 종종 경기장에서 보는 일이다. 현재는, 관중의 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비신사적인 행위에 대해 적극적인 견제가 이루어지고 있고, 벌칙도 엄격해 지고는 있다.

40대 이상들은 기억하겠지만, 70년대에는 박스컵이라는 국제축구경기가 있었는데, 당시에 경기장 난투극이나 선수들의 주먹다짐을 은근히 바라기도 했었다. 자국이 지거나 할 땐, 관객들이 부추기기도 했다. 아이스하키에서는 보디체크가 룰로 보호가 되고, 때로는 격렬한 주먹다짐에 관객들이 환호를 하기도 한다. 그들은 대표선수이고 대표선수는 우리를 대신해서 이겨야 하는 것이다. 그럼, 국회의 대표선수들이 안 싸우고, 사이 좋게 경기를 짜고 운영하면 어떻게 될까? 단독 드리블에 슬쩍슬쩍 길을 비켜준다거나 자살 골을 넣는다면? 그와는 반대로, 대표선수를 뽑지 않고, 전 이해관계 집단들 전원이 여의도 광장에서 황야의 결투를 벌인다면? (요즘 이런 광화문에서 이런 조짐이...) 이는 대의 민주주의 시스템이 아닌 것이다. 국회는 정당이익의 대표선수로서 집단을 대표해서 나가 경기를 하면서, 싸움도 하는 것이다. 싸움 안 하는 국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이다.

왜 전기 톱 인가? (왜 빠루 인가?)

우리나라의 헌정 60여 년 동안의 국회 역사는 결코 긴 기간이 아니다. 영국의 의회역사와 프랑스의 의회 역사와 비교한다면 아직 걸음마도 못한 단계인 것이다. 역사 속에서, 영국이나 프랑스의 의회에서는 칼 싸움을 했었고 수많은 사상자가 있었다. 따라서, 전기 톱으로 문 부수고 공중 부양하는 정도는 아주 귀여운 모습이다. 국회에서 사시미 칼이나 일본도(刀) 등이 등장해야겠는가? 그런 면에서 볼 땐, 우리의 국회 난투극이나 회의장 문을 전기 톱질하는 모습은 양념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모든 경기는 룰이 있고, 룰에 의해 강제되는 아마추어 경기와 룰이 내재되어 운영되는 프로의 경기가 있다. 우리나라의 국회는 아마추어인가 프로인가? 과거 보스(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정치 시절에는 그나마 프로적인 면모가 많이 있었다. 가장 폭폭 했었던 5공 정부 시절에도 프로적인 면이 있었다. 그러던 것이, 보스 정치의 영향력이 퇴조하고, 진보정권으로 오면서 점점 더 프로적인 면모가 엷어지더니 급기야 아마추어도 아니고, 초등생 반장 선거만도 못한 지경에 이르렀다. 한마디로 정치 엘리트의 육성이나 양성이 없이 저질의 정치꾼들도 채워진 결과이다. 정당의 정강정책이나 민의의 수렴이 아닌, 자기들끼리의 이권싸움이 된 것이다. 국회의원 누구도 민의를 대변하는 사람은 없다. 진짜 대변한다고 한다면 본의 아니게도 무소속 의원일 것이다. 우리나라의 국회는 그들만의 리그인 것이다. 바로 이것이 문제인 것이다. 민의의 수렴을 통한 정당의 구성과 대표의 선출로 국회를 이룬 것이 아니고, 이권집단의 집단이익을 위한 그들의 선수들이 그들끼리 싸움질을 한 것이기에 문제인 것이다.

국민과 민의를 위한 싸움은 오히려 권장해야 하고, 온 국민이 성원해야 하는 것이다. 민의를 대표하여 톱질도 하고 공중부양도 해야 한다. 그 패거리들의 이익을 위한 싸움이 되어서는 안 된다. 민의를 대표하여 프로 경기를 하는 국회를 바란다. 자기들만의 이익을 위해 쌈질하는 언더 아마추어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국회가 앞으로 프로적으로 발전하도록 성원하고 육성하고 지지할 만한가? 필자는 전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태생적인 한계를 넘어, 유전자적인 돌연변이가 일어난다면 모를까, 현재의 국회 시스템으로는 불가능하다고 판단한다. 현재의 정당 구성과 의원들 및 정치권의 수준을 볼 때, 합리적 진화는 기대할 수가 없다고 본다. 이제는 현대에 맞게 민주주의의 새로운 기법이 필요할 때이다. 전 국민이 실시간으로 민의를 표시하고, 뜻을 모으고, 선의의 경쟁을 하는 모델이 필요한 것이다. 고대 아테네의 직접 민주주의의 진화된 모형을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가능한가?

바로 정보통신 기술을 근간으로 한 실시간 민의 의사표시인 것이다. 전 국민이 실시간으로 인터넷과 휴대폰을 통하여 의사를 표시하고, 집계된 민의가 다수결에 의해 정치에 반영되는, 현실적으로 가능한 정치과정을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국회는 정당만의 지구별 리그로 특성을 존속시키고, 여기에 민의만의 내셔널 리그를 따로 창설할 필요가 있다. 상하 양원제도 있고, 내각책임제도 있어 왔는데, 이제는 정보통신 혁신의 시대에 걸맞게 민의 실시간 정치과정을 만들 때가 되었다. 의견 수렴과정에서 자칭 정치 엘리트들의 의견이 개입된 왜곡된 민의가 아니라, 액면 그대로의 민의가 실시간으로 집계되고, 분석되고, 수렴되어 안건을 만들고, 그 안건들의 공정하고도 신속한 경쟁과 판단이 전자투표를 통해 결정이 필요한 시대이다.

국내의 휴대폰 가입인구수만 4천 350만 명이다. 의견을 SMS로 묻고, 즉답을 구하는 것이 기술적으로 어렵지 않다. 문제는 오로지 이런 정치과정을 통한 기존 정치 기득권의 이해득실일 것이다. 정치과정을 독점하던 위치에서 하나의 정치과정 속의 부분품으로 전락하게 되니, 이런 제도의 도입을 달가와 할 리가 없다. 오히려, 그 동안 갈고 닦은 톱질과 공중부양 실력으로 총력 저지나 하지 않을까 싶다.

전자투표제에 대한 논의는 이미 시작된 것으로 알고 있다. 이는 단순히 투표 방식에 관한 기술적인 의미가 아니고, 직접 민주주의의 현실적 실현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시대적인 미션인 것이다. 그 기술적인 방식에 대해서는 여러 이론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요점은 전체 민의의 실시간 수렴과정과 대의 민주주의 제도의 상호보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2009년 11월 칼럼)

(2020년인 현재로 돌아와 다시 한번 정리를 해본다. 전자투표는 그동안 시행착오와 음모적 구설에도 불구하고 정착되어 가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워낙 중대한 사안이다보니 기술적 신뢰와 보안에 의구심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블로체인 기술이 도입이 되어 기술의 혁신이 이루어지면 충분히 가능하리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이 글이 2030년에는 아득한 기우였다는 기록으로 남겨지고 싶다.)

아놀드 박사 <choi.arnold64@gmail.com>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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